어른..

2022. 2. 22. 03:12

내가 사는 모습이 남들과 별반 다를바 없어 보인다는걸 서서히 느낀다. 천천히 간다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는 요즘.. 그 것이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동기가 된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나이가 그저 숫자일 뿐이라 치부할 수 는 없는 거라고 느끼게 된 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하나씩 가정을 꾸려가는 걸 보게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무살 그 푸르렀던 시절부터 사랑 사랑 하며 부르던 그 사람을 이제 놓고 싶다고 친구는 말을해. 한 친구는 결혼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한 친구는 그 것에 관한 또 다른 견해들을 내놓았지. 나는 친구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었어. 흐릿하게 나마 떠오르는 이야기는 사람 때문에 즐거워하던 우리 젊은 스무살에 관한 이야기였지. 그 때의 우리들에 관해서 생각해봤어. 첫 사랑이 가버렸던 나의 친구들. 혹은 여전히 첫 사랑을 기다렸던 나의 친구들. 술취한 밤 헤어진 그 사람 대신 날 껴안고 울던 나의 친구들. 좋아한다 말도 못하고 속으로 곪아가던 나의 친구들. 친구이상 연인이하의 감정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의 친구들. 훌쩍 그렇게 너무 길었던, 혹은 너무 짧았던 우리의 스무살이 지나갔어. 그때는 왜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까, 가끔씩 한숨도 내쉬어 보지. 우리의 주제는 젊은 꿈이었고, 소중한 친구들에 관한 것이었으며, 사랑하는 연인에 관한 것이었지. 그렇게 너무 길었던, 혹은 너무 짧았던 스무살이 지나갔어..

스물다섯이 가까워오던 즈음에 우리의 생활 속에 이렇듯 일찍이 '돈'이란 것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에 문득 놀라게 되었지. 백수를 전전하던 친구가 지나가고.. 직장을 옮겨다니던 친구가 지나가고.. 적금이 만기되었다고 좋아하던 친구가 지나가고.. 뒤늦게 새로운걸 시작하는 친구가 지나가고.. 누군가 드디어 첫 테입을 끊고 결혼했다는 소문이 지나가고.. 사람 때문에 즐거워 하던 우리들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들이 되어있었지.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결혼에 관한 이야기들은 몇 달후 혹은 몇 년후 내 이야기가 될 사실로 인식하게 되고, 결혼에 필요한 자금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제 주제로 떠올랐는지.. 언젠가 나누었던 아이에 관한 이야기들도 이제는 몇 년후 몇 달후의 이야기가 될꺼라는 생각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지.. 어느날 친구의 입에서 더 이상 '우리집'이 아닌 '친정'이란 말을 듣게되고 '처가댁' 혹은 '시댁'이란 말을 듣지.. 명절날 몇일씩 계속되는 연휴에 모임을 갖는다는 건 어려워졌고.. 하나둘씩 그들의 처가댁, 시댁으로 그들의 친정으로 발길을 돌렸지. 이제는 누구의 아내 혹은 남편 누구의 어머니 아버지가 될 스무살의 풋풋한 그들을 떠올리게 되면, 추억이 되어가는 것 들은 시간이 만들어 주는거라고 느끼게 되지.

무언가 불안해하고 있는 너를 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되었지. 혹시 우리의 나이가 타협점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나이는 아닐까. 나름의 정의들은 뒤로 밀어버리고,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서서히 꿈을 잠식시키게 될 나이는 아닐까. 내 아이에게 나의 꿈을 강요하지는 말자고 술한잔과 함께 침튀기며 우리의 부모님들에 관해 불평을 늘어 놓았던 걸 내 아이게게 똑같이 시키게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잠식되어 버린 내 꿈을 못내 아쉬워 하면서 그렇게 내 아이에게 똑같이 내 길을 물려주는건 아닐까.

이만큼 말을 건낼수 있었던 건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내 나이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헤어져 나왔기 때문일꺼야. 잠깐동안 많은 고민에 빠졌어. 늙어간다는거 정말 참을 수 없더군. 경제적 여건에 대한 문제들도 나를 괴롭혀오더군. 결혼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도 그 문제들 중 하나지. 그래,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건 시간이었어. 시간은 누가 붙잡지 않아도, 누가 안내해주지 않아도, 저 혼자 잘 가버리잖아. 내가 이만큼 낡아있건, 이만큼 새로워졌건, 시간은 게의치 않고 저 혼자 저렇게 잘 가버리잖아. 그게 참 끔직해. 그래, 그건 끔직한거였어. 결론을 말하자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는 거지. 사는 것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 예전보다 훨씬 나는 잘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아. 사랑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미래에 관해서 두려워 하는 십대들.. 그들의 문제를 마음으로 나는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아.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해결책도 내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다보면, 좀 더 자세히, 좀 더 따뜻하게 눈앞의 작은 풀꽃이 아닌 그 풀꽃이 연출하고 있는 풍경들을 볼 수있을 것 같아. 멋진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아.

어린시절에 어른들이 곧잘 꼬마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지.
"넌 커서 뭐가 되고싶니?"
꼬마들 입에서 나올법한 대답들 중엔 이런게 있었어.
"전요. 빨리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싶어요. 어른이요."
그 어린시절처럼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나를 지켜보면서 가볍게 내 어깨 한 번 툭 쳐주고.. 웃어버렸어. 아직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지만.. 작은 터널하나를 방금 지나쳐온 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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